아이폰3GS를 완전히 배낀 결과 삼성은 애플에게 1조 2천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 아이폰을 배낀 덕에 거둔 성공에 비하면 배상액은 오히려 작은 편이다. 이게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내 견해다.

우선 애플이 주장한 특허는 사각형의 둥근 모서리가 아니다. 그런 식의 묘사는 대중적일지 몰라도 전문성을 의심받게 한다. 그런 점에서 <레프트21> 88호에 실린 글은 저작권 문제를 좋은 관점에서 다루고 있지만, 옥의 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번역하면 미국 법원의 판결은 이런 거다. “갤럭시S는 한 마디로 아이폰3GS 짝퉁이고, 그걸로 애플의 이익을 침해했으니, 판매 금지! 그리고 1조 2천억 배상!”

주류적 논평은 됐고

자, 그러나 우리가 삼성을 편들거나 애플을 편들거나 해야만 한다면 참 우울할 거다. 애플은 폭스콘 등 중국 저임금 혹사노동의 책임자고, 삼성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혹사노동을 시키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이 두 회사가 만드는 제품 만큼이나 두 회사의 노동착취는 ‘세계 초일류급’이다. 즉, 나는 아이폰이 훌륭한 제품이라고 생각하고 더 좋은 맥북을 사용하고 싶지만, 이걸 만들어 주신 애플과 삼성에 감사하는 마음따위 없다.

나에게 이 손해배상 소송은 혁신의 동력을 지키는 소송도(애플의 관점), 혁신의 동력을 파괴하는 소송(삼성의 관점)도 아니다. 그냥 두 세계적 깡패의 자리싸움이다. (한 깡패의 덩치가 다른 깡패에 비해서 심하게 크긴 하지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흔한 경구 하나를 빌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정말 그렇다. 내 친구는 삼성이 애플의 광고를 100% 베낀 것을 보고 “싸가지가 없다”고 표현했는데, 지금 삼성의 그런 행태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 일단 특허권이 가지는 본질적인 함정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다.

유명한 이야기. 잡스는 제록스사의 마우스와 아이콘을 클릭해 창을 띄우고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방식(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을 훔쳐서 발전시켰다. 제록스는 엥겔하트에게서 아이디어를 훔쳤다. 잡스는 그걸 대놓고 말했다. 그게 문젠가? 문제될 거 없다. 인류적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오직 자본주의의 관점, 창조가 돈과 연결될 때만 문제가 된다.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제록스의 연구원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가치있는 형태로 구현해 준 잡스에게 고마워했을 지도 모른다. 제록스 연구원들의 실제 입장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사람들은 분명 “제록스가 그거 특허냈으면 떼돈 벌었을 텐데” 하고 말할 거다. (과연 그럴까? 그거 사용하려고 돈 내야 했다면 못 썼을 지도 모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처음 윈도우를 세상에 내놨을 때 애플이 특허 침해로 소송을 걸었다. 애플이 패소한 건 인류사적으로 다행한 일이다. 만약 애플이 이겼다면 우리는 아주 비싸지만 사용하기 편리한 맥, 아니면 명령어를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피씨 말고는 사용할 수 있는 게 없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리눅스의 X윈도를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심지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모방은 ‘창조자’(세상에 아무 것도 모방하지 않은 창조란 없다는 점을 논외로 하고) 말고는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둥근 모서리 사각형이 부각되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애플은 이번 소송에서 다음 특허들도 인정받았다. (참고) 한 손가락 스크롤, 두 손가락을 모아서 확대 축소를 하는 것, 화면을 톡톡 두드려 확대를 하는 것, 맨 아래로 스크롤했을 때 화면이 튕겨 올라오는 것. 무슨 생각이 드는가? 이게 의미하는 바는 앞으로 스마트폰 만들 때 이런 것들을 돈주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쉬운 말로 정리하자면, 바퀴 사용할 때 돈 내라는 이야기다. 미닫이 문도 특허 낼 걸 그랬다.

주의! 시그마 함수 사용료 100$ 초과 ©공잠

창조와 이윤이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면, 저런 기술들은 마땅히 전 인류의 발전을 위해 무료로 풀려야 한다. 그리고 전자본주의 사회에선 그랬다.

자본주의에서 이런 주장은 몽상에 가깝다. 당장 나도 누가 내 창조물로 돈을 벌면 몹시 배가 아플 것이다. 내 코가 석자인데 인류의 발전이 뭔 소용이냐!

물론 나는 떼돈 벌 생각은 없다. 그래서 만약 내가 먹고 살 만하다면, 그래서 특허를 통한 떼돈을 꿈꿀 필요가 없다면, 그러면 난 인류의 발전을 위해 내 창조물을 얼마든 내놓을 수 있겠다. 그래서 민주적 평등이 창조적 발전의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오픈소스가 인류의 발전을 위해 무료로 풀린 기술의 대표적 예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오픈소스의 매우 일부에 대한 묘사다. 대부분의 오픈소스는 생태계의 기반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풀고 서비스를 팔거나(워드프레스), 경쟁 회사의 시장을 침식하거나(리눅스와 오픈오피스) 하려는 등의 동기가 지배한다. 시작이 어쨌거나 발전한 것들은 그렇다. 돈 없으면 오픈소스도 못한다. 돈은 기업이 준다. 왜 주겠나. 이윤이 되니까 주는 거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그러나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조차 자본주의에서는 왜곡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겠다.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굳이 왜 ‘짝퉁’이 필요하겠는가. 짝퉁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냥 너도 나도‘진퉁’을 많이 만들면 그만이다.

내 생각에 ‘짝퉁’은 오직 자본주의에서만 존재할 것 같다. “어라, 그럼 너는 획일화가 낫다는 거냐?” 할 수도 있다. 무슨 소리. 삼성 같이 완전히 베끼는 게 바로 획일화를 낳는 거다. 그런 식이 아니라 모방을 디딤돌로 삼는 더 나은 시도가 얼마든 가능하다. 다양성이 만개할 거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어설픈 모방보다는 차라리 완전한 모방을 통해 ‘짝퉁’이 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윤을 얻어야 하므로 안전운전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는 저해된다. 발전도 저해된다.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한국에도 좋은 디자이너가 많은데, 디자인을 해서 위로 올리면 빠꾸먹고, 외국 걸 참고하라고 하고, 다시 올리면 또 빠꾸먹고 다시 외국 걸 참고하라고 하고, 그래서 외국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올리면 통과되고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말이다. 이건 모방을 통한 창조가 아니다. 그냥 내 친구 말마따나 “싸가지 없는” 베끼기다.

두 가지 측면에서 창조를 왜곡하는 자본주의

즉, 내 생각에 자본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창조를 왜곡한다. 첫째는 모방을 통한 창조를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이게 두드러진다. 그러나 두 번째도 있다. 모방을 할 때조차 그건 창조를 촉진하는 모방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내가 자본주의가 모든 혁신을 가로막는다고 이야기한 게 아니라 ‘저해’한다고 말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