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폰이 한국에 등장하기 전부터 수첩이 아니라 PDA를 활용해서 할일을 관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격이라는 벽에 부딪혀서 하지 못했다.

아이폰이 등장하고 나서 쾌재를 불렀다. 최고의 할일 관리, 일정 관리 프로그램이 뭔지 찾아 다녔다.

그리고 할일 관리(ToDo List)와 일정 관리(캘린더)가 결합돼 있는 Pocket Informant(제작사 WebIs)를 구입해 사용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포켓 인포먼트가 동기화 에러를 자주 뿜고, 너무 느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정 관리 기능은 없지만, 최고의 할일 관리 프로그램이라고들 이야기하는 OmniFocus(아이폰용 링크다. 아이패드용은 따로 있고, 따로 구매해야 한다.)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제작사 OmniGroup)

그러다가 제대로 사용하려면 기능만 익힐 게 아니라, 옴니포커스가 기반하고 있는 할일 관리 철학을 설명하고 있는 책을 읽고 충분히 내용을 습득한 후에 이걸 사용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옴니포커스와 GTD

들어 봤을지 모르겠지만, 옴니포커스는 GTD라는 업무 관리 방식을 가장 충실히 구현한 앱이라고 한다. GTD는 프랭클린 플래너의 업무 관리 방식과 쌍벽을 이루는 방식이라고 한다. (내가 GTD 방식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아이폰으로 이해하는 GTD 할일 관리’ 라는 글을 통해서다.)

이 글에서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고, 그래서 책을 찾아 봤다. 역시 있었다.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라는 이름으로 번역돼 있었다. 원서 제목은 아마도 《Getting Things Done》인 듯. 번역하면 “할일 완료하기” 정도가 될까?

그래서, 일단 저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긴 설 연휴가 이 책과 함께 날아가게 됐다. (만약 영어가 가능하다면, 저 책보다 《Making It All Work》라는 책이 더 낫다고 한다. 《Making It All Work》가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인데 좀더 정리돼 있고 개념이 명확해 졌다고 한다. 책의 저자 데이비드 알렌의 사이트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여튼 나는 영어는 별로;;)

또한 훌륭한 설명글도 발견한 것 같다. 다 읽어 보지는 못했는데, 신뢰가 갈 만한 블로거가 추천[무슨 일인지, 글이 사라졌다. http://inuit.co.kr/1496]한 글이니 괜찮아 보인다. GTD 따라잡기 시리즈다.

내가 이해한 바를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소개는 이쯤 하고, GTD 업무 관리에서 핵심적으로 내가 느낀 것을 짧게 정리해 보겠다. 완전한 정리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만약 내 짧은 정리가 괜찮다고 느껴진다면 책을 구해서 읽어 보는 쪽으로 가기 바란다.

  1. 잠재의식속에 들어있는 모든 일거리를 끄집어 내서 의식의 영역에 들여 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일거리는 나의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 따라서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끄집어내서 일거리 수납함에 쌓아야 한다. 예컨대 이런 식인데, 아래는 책 내용을 인용하고 내가 코멘트를 단 것이다. 코멘트 부분은 ‘:’ 이하다. ‘[]’로 둘러싼 부분은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첨가한 것이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그것을 기억 속에 집어넣게 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늘 그것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 당신 몸 어딘가에서는 지난 1년간, 하루 24시간 내내 창고를 청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 나는 이 문제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신은 창고 청소에 대한 합의와 회사를 인수하기로 한 합의와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정신 속에서는 두 가지 모두 그냥 단순한 합의일 뿐이다. 따라서 무언가를 마음속으로만 지키고 있어서 즉시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깨진 약속이 되고 만다. [그러면 우리는 피곤하고 불쾌해진다.]

… [종래에 있었던 시간중심 관리 방법은] 만일 스스로에게 행하도록 지시한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면, 그것을 무시해도 좋다는 것을 은연중에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경험상으로 그것은 옳지 않다. 최소한 우리 의식의 깊은 밑바닥에서는 그 합의를 지울 수 없기 때ㅐ문이다. 또 우리의 정신세계가 운영되는 방식 역시 그렇기 때문에, 모든 합의 사항은 반드시 읫식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그 합의를 완벽하게 인식한 가운데 포착하고, 객관화하고, 정기적으로 검토하여 당신이 관리하는 영역 내에 자리잡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일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그 합의는 오히려 정신적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당신이 모든 것을 다 수집하는 이유는 모든 것이 다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중 상당수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집하지 않은 항목은 심각한 압박감으로 다가오며 주의력을 분산시킨다는 점에서 미완결물과 거의 동일한 영향력을 갖는다.

할 일들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명확한 판단을 해 줘야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말이다. 설득력있다.

P.246 ~ 248

  1. 일거리는 단지 어떠어떠한 일이라고만 써 놓아선 안 된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 그 행동이 간단한 것이어서 2분 안에 처리할 수 있는 거라면 당장 한다. 그렇지 않은 일이라면 프로젝트로 만들고, 그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뭔지 적는다. 행동 중심으로 할 일을 적어야 막연하지 않다. 막연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역시 책 내용을 인용해 본다. 사실 책 내용 인용이라기엔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첨가한 내용이 좀 많긴 하다.

[행동 리스트가 아니라 또다른 일거리 리스트를 만드는 예]

  • 만찬회 담당자들 회의
  • 사랑하는 아내의 생일
  • 접대
  • 슬라이드를 이용한 제품 설명회

… 이 항목들에는 분명한 다음 행동이 안 보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들여다 보기만 해도 부담을 느끼는 것이었다.

[행동 리스트로 만들면 다음과 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만찬회 담당자들 회의 때 제시할 안건 준비를 위해 폭죽 가격과 효용을 알아 본다.(전화)
  • 제인에게 아내 생일 선물을 추천받는다.
  • 접대 장소를 예약한다.
  • 제품 설명회 슬라이드에 사용하기 위해 제품의 특장점을 3가지로 간추린다.

이렇게 행동이 명확해야 스트레스가 덜어진다는 말이다.]

P.260 ~ 261

  1. 할일 관리는 단지, 스케쥴러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오프라인에서 접하는 서류더미들, 메모, 메신저 대화, 편지, 이메일, 영수증 등을 모두 모아야 한다. 따라서 단지 아이폰의 할일 관리 어플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할 일 관리를 한다고 협소하게 접근해선 안 된다. 오프라인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방법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아이폰의 어플은 그 과정의 일부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강조해서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며칠 사이에 나의 할일 관리 프로그램 사용 방식이 상당히 변했다. 아래는 옴니포커스 어플이고, GTD 공부라는 프로젝트에 속한 할일 목록이다.

대여, 읽기, 메모 마저 하기, 책의 도표 사진찍어 두기 등으로 할 일을 매우 세분화하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쓰기와 책 반납까지 완전히 세부적인 일들을 모두 기록했다. (사실 평소엔 이미 완료한 일은 굳이 보이게 해 놓지 않는다.)

아래는 ‘더 나은 집 만들기 2012-02’라는 프로젝트에 있는 할 일들이다.

‘청소기 사기’와 ‘전자렌지 사기’는 룸메이트와 협의할 사항이다. ‘룸메’라는 꼬리표(Context)가 붙어 있다. ‘밥상 구하기’와 ‘후라이팬 구하기’ 아래는 ‘편의점, 슈퍼’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이건 편의점이나 슈퍼에 갈 때 이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거다. ‘까는 이불 사기’와 ‘책장 물색’은 ‘컴퓨터로’라고 돼 있다. 컴퓨터로 알아 보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다.

이런 꼬리표는 언제 도움이 될까? 외출을 한다고 하자. 슈퍼에 들를 거다. 나는 Context 항목으로 가서, ‘편의점, 슈퍼’ 항목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아래처럼 나온다.

슈퍼에서 후라이팬을 사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일정은 2월 29일로 돼 있고 넉넉한 편이니 굳이 2월 말이 될 때까지는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달력 연동

옴니포커스에는 달력 연동 기능도 있다. 할 일의 기한을 걸어 두는 경우가 있다. 이건 특정 시간에만 처리해야 하는 ‘일정’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다. 기한 안에만 한다면 언제 하든 상관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것들과, 달력의 일정을 함께 표시해 주는 기능이다. 이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있었다. 꽤 쏠쏠한 도움이 된다.

‘매직 마우스 배터리 준비’ 같은 시시콜콜한 사항도 프로젝트로 만들고, ‘질문하기’ 같은 ‘행동(Action)’을 세부사항으로 넣었다.

가장 크게 변한 것 1 – 목록의 내용이 행동 중심으로 변했다

나는 예전에 프로젝트를 “개발 탐구”라는 식으로 만들어 놓고 개발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여기에 넣었다. “집안일”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거기엔 늘 수많은 잡일들이 들어가 있었다. GTD에서는 이런 식의 프로젝트 관리는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프로젝트 안에는 ‘행동(Action) 목록’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목록을 봤을 때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막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훌륭한 깨달음이었다.

프로젝트는 긴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는 짧은 경우들이 많다. ‘더 나은 집 만들기 2012-02’처럼 2월 안에 처리할 생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 ‘매직 마우스 배터리 준비’ 같은 것들 말이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매직 마우스 배터리 준비’가 그냥 하나의 할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걸 프로젝트로 만들고 세부 행동 사항들을 프로젝트 안의 ‘Action List’로 넣게 됐다. 이렇게 하면 GTD에서 말하는 대로 머리가 좀더 말끔해질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지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하나의 ‘할 일’을 ‘프로젝트로 바꾸기(Convert to Project)’할 수 있는 기능이 포켓 인포먼트에도 있었고, 옴니포커스에도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 기능이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일이 매우매우 작아서 정말 단발성 일인 경우(예컨대 위 그림에서 ‘빨래 개기’)에는 그거 자체를 행동으로 관리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처음에 할 일을 수집할 때 ‘매직 마우스 배터리 준비’라는 추상적인 할 일로 수집을 했다가, 나중에 이걸 프로젝트로 변환하고 세부적인 행동 리스트를 넣을 수 있게 해 주는 기능이었던 것이다.

가장 크게 변한 것 2 – 정말 거의 모든 것을 할 일 관리에 넣게 됐다

그리고 정말로 세부적인 것 하나하나까지 할 일 관리에 넣게 됐다. 예전에는 정말로 닥쳐 있는 프로젝트 같은 걸 할 일 관리에 넣고, 개인적인 일이나 일부러 적어 놓지 않아도 기억으로 처리 가능한 것들은 굳이 할 일 관리에 넣지 않았다.

이제는 거의 모든 것을 생각날 때마다 일단 할 일 관리 목록에 집어 넣고 있다. 아래 이미지를 보자.

예전 같았으면 이런 건 절대 할 일 목록에 넣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모든 걸 일단은 집어넣는다. 그리고 각 항목에는 대부분 컨텍스트가 붙어 있다.

기대

나는 할 일 관리를 잘 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증이 있었던 거고, 그래서 책을 찾아 보게 됐는데, 역시 모든 실무는 단지 실무가 아니다. 철학이 깔려 있고, 그걸 이해할 때 가장 훌륭하게 실무를 처리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비록 여기서 내 변화를 다룬 건 대부분 아이폰을 어떻게 활용하게 되었나 하는 것이지만, GTD는 단지 아이폰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고서, 회사 사무실에 ‘수집함’을 마련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업무라는 것이 온라인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모든 문서가 파일로 오가는 게 아니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종이로 된 요구사항을 받게 된다. 회의록도 종이로 돼 있다. 영수증도 종이로 돼 있다. 이런 것과 관련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 때는 반드시 오게 돼 있다. 그리고 이런 오프라인의 자료와 아이폰의 할 일 관리를 통합해야 가장 훌륭한 업무 관리가 될 것이다.

예컨대, 회의를 하게 되면, 회의록을 일단 수집함에 넣는다. 그리고 일거리를 수집할 때 회의록을 다시 꺼내게 될 것이다. 회의록에 따라서 내가 처리할 일 등을 구분을 해 아이폰에 담는 것이다.

만약 회의 때 나온 참고자료가 있는데 종이로만 존재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 때는 서랍이 필요할 것이다. 파일에 라벨을 붙이고, 가나다순으로 파일함에 해당 참고자료를 꽂아 둬야 할 것이다.

이렇게 오프라인의 물질적인 세계와 아이폰의 디지털 세계를 만날 수 있게, 하나의 업무 관리 철학 안에 통합해야 진정으로 제대로 된 프로세스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오프라인에는 앞으로 한 번 적용해 볼 생각이다.

내가 책을 읽지 않고, 단지 블로그에 있는 ‘아이폰으로 GTD 배우기’ 정도만 읽었다면 나의 업무 프로세스 전반을 개선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이상이 내 감상이었고, 아래는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거나 메모한 것들이다. 굉장히 많이 밑줄을 그엇고, 꽤 긴 메모들을 했다. 이 메모들은 아이노트 FS-94KBT 블루투스 키보드(싸구려)를 사용해서 아이폰의 iReadItNow 앱에 적었다.

*덧붙임 : 포켓 인포먼트에는 기본적으로 캘린더가 포함돼 있었는데, 옴니포커스에는 캘린더 관리 기능은 없다. 그래서 아이폰 기본 캘린더를 이용하게 됐다. 포켓 인포먼트가 맘에 들었던 점은 달력에서 일정이 텍스트로 나오는 기능이었는데, 사실 글자가 작아서 일정이 다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 눈에 보이는 게 좋았다. 그런데 발상을 전환했다. 그냥 기본 캘린더에 목록형으로 일정이 출력되게 했다.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은 포기했지만, 훨씬 쾌적한 속도가 제공됐다. 근접한 일정들을 훨씬 명확하게 볼 수도 있었다. (물론 포켓 인포먼트도 목록형 뷰를 제공한다. 그러나 느렸다.) 그래서 당분간은 OmniFocus + 기본 캘린더 체제로 가기로 결정했다.

➔ 책을 읽고 한 메모들